(부제 : 과학자가 부활을 믿을 수 있나요? - 칼럼 리뷰)
얼마전 '사랑이란 존재 하지 않아! 보이지 않는 건 믿을 수 없어!' 라고 하는 말을 하는 것을 흘깃 듣고선 쉬이 지나칠 수가 없었다. '사랑'이라는 주제가 원체 자극적인 탓도 있겠지만, '아닌데...'라고 마음의 소리가 솟구치는데, 이를 대변해줄 좋은 말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던 탓도 있다.
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...? 아닌 것 같은데...
과연 이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?
이전에 감명 깊게 보았던 우종학 교수의 '과학자가 부활을 믿을 수 있나요?' 칼럼을 인용하여 그럴듯한 설득을 해보려고 한다.
내 아내가 나를 사랑하는 건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. 물론 많은 경험적 증거를 댈 수는 있습니다. 하지만 사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속이고 있거나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내의 사랑을 믿습니다. 사랑은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.
-과학자가 부활을 믿을 수 있나요? 中-
본 글을 남김으로써 '예수의 부활을 믿어라!' 라고 말하고 싶은건 절대 아니다.
나는 현재 개인적으로 기독교나 기타 다른 종교를 믿고 있지 않다.
하지만 우연히 보았던 우종학 교수의 '과학자가 부활을 믿을 수 있나요?'라는 칼럼에서는
으레 가질법한 고정 관념이나 편견들보다 한 차원 이상의 것들이 있음을, 내가 세밀히 알지 못하는 무언가의 것들이 있음을 직감하게 되었고, 감명 받았던 그 기억을 더듬어 보면, 해당 주장을 설득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.
존재에 대한 증명을 할 수 없다고 해서, 부재한 것은 아니다. 즉, 존재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.
링크한 아래의 칼럼에서 주장하는 주된 논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위와 같다.
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고, 다른 분야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논리지만,
특별히 인상 깊었던 점은 그러한 논리가 우리의 일상의 고정관념('과학자인데 어떻게 비과학적인 부활을 믿어?')에도 정확히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.
데이터 쟁이인 본인의 입장에서 가장 가깝게 다루는 추론 통계학에서도 다음과 같은 논리가 적용되기는 마찬가지였다.
가설 검정 결과, p-value가 높은 상황에서, 즉 귀무가설이 참이라는 전제하에 계산된 통계량이 낮지 않으니, 귀무 가설을 기각할 증거가 없다. 이 때, '귀무 가설을 기각할 증거가 없다'라는 판단이, "귀무가설이 참이다"를 증명한 것이 아니며. 즉, 여전히 귀무가설이 참이 아닐 가능성은 존재한다.
다시 돌아와 '사랑이란 존재 하지 않아. 보이지 않는 건 믿을 수 없어.' 라고 한다면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아도 될 것 같다.
인용문에 따르면, 아내의 사랑을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, 믿을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. (아내와 함께 해온 수 많은 경험적 증거를 통해 믿을 수 있다.)
우리네 세상의 논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, 존재 하지 않는 것(↔ 부재)은 아니라고 말해오고 있고, 과학은, 또 세상은 그렇게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.
해당 글
https://www.scitheo.org/305?category=85029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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